내가 살던 고향은... 내 사는 [이야기]

대한민국의 남단. 전라남도 고흥. 
지금 이곳은 복숭아꽃 살구꽃 봉우리가 올라오고 있고 산수유와 매화는 만개하기 직전이다. 황사로 인해 풍경도 우리 가족의 몸 상태도 그리 좋진 않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의 봄, 도시의 봄 보다 훨씬 더 따뜻한 느낌이다. 

아버지와 엄마 모두 촌에서 자라셨고 조부모 외조부모 모두 그 시골에서 살고 계시고 또 그곳에 묻히셨다. 
어릴 때부터 방학이면 남동생과 시골에서 지냈으며 여름에는 새참을 나르고 겨울에는 저수지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고드름 싸움을 하곤 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아궁이에 남은 불로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었고 소나 토끼, 돼지, 닭 등등 집에서 기르는 가축과 친숙했다. 아궁이와 흙으로 만들어진 집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늘의 별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자랐다. 현재 내 인생을 지탱하고 있는 큰 자산 중의 하나가 바로 시골에서의 시간과 그 기억이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말 그대로 놀러가는 거니까 그곳은 마치 여행지 같았다. 농약을 치거나 고추를 말리거나 벼를 베거나 소 여물을 주거나... 하는 일들은 우리 차지가 아니었다. 설사 그런 일들을 우리가 한다고 해도 그건 재미삼아 하는 일이지 생업은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시골에 대해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시댁인 남쪽 촌으로 이사를 온지 1년이 훌쩍 넘었다. 여기서도 나는 이방인일 뿐이다. 우유를 짜거나 다른 가축에 밥을 주는 일, 혹은 돌보는 일, 텃밭을 가꾸는 일은 내 차지가 아니다. 이런 저런 상황도 상황이지만 나 만의 일이 있기 때문이고 하고 시어머님께선 우리가 시골에서 살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을 시키시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그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끔 고사리를 꺾거나 쑥 캐기, 다슬기 잡기, 무화과 따기나 매실 줍기 등 내가 필요로 하는 일이나 여가를 보낼 만한 일을 할 뿐이다. 한 마디로 낙향이나 귀향이 아니기에 진정한 시골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호강을 하고 있는 거다. 

내가 어릴 적보다 20여 년이 훌쩍 흘러. 나이를 든 나 자신도 많이 변했지만 시골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도로가 나지 않는 길이 거의 없고 (심지어 논이나 밭이 샛길도 트랙터나 트럭을 대기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 폭 1미터가 넘는 냇가는 모두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시골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낮은 의식수준이 문제로 작용된다. 소위 가방끈이 짧다고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가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적 현상이나 지식에 대한 부족은 개발과 발전의 이해를 상당히 곡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재 고흥에 화력발전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고흥과 관계가 없는 전교조나 타 단체에서 반대하는 일을 정작 고흥 군민들은 찬성하는 쪽이 많다는 거다. 화력발전소 하나가 고흥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물론 주최측에서도 그렇게 홍보를 하고 있고 말이다. (지역이기주의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고 시골은 낙후되어 있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입장은 아니다. 사실 문제를 지적하자면 도시 있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졸부 근성으로 개발과 발전을 이뤄왔기에 전반적으로 굉장히 암울한 미래가 예상되고는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최근 자연, 생태, 웰빙... 등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젊은 사람들 중에는 환경 운동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물론 훨씬 더 많은 사람의 참여,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어쨌든. 의식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지만 특히 시골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 오죽하면 요즘 시골인심이 도시보다 못하다 할까.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인구 문제도 심각하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대개가 노인이라는 사실은 시골에 살지 않는 사람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시부모님께서 다니는 교회(그냥 따라가는 시늉만하고 있는 곳)는 교인이 약 50명 정도인데 그 중 1/3이 70대 이상이고 전체의 3/4 가까이가 50대 이상이다. 그 나머지는 10대와 20대이며 20대는 거의 없다. (타지에서 대학에 나니거나 취직해 있다) 
폐교된 학교가 부지기수고 한 학년에 한 반이거나 한 반에도 인원은 20명 이하인 곳이 많다. 그리고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부모의 사정으로 조부모나 외조부모에게 맡겨지는 경우라고 한다. 지난 3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꽤 되는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 20년. 전에는 그저 시골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었다면 시대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내가 부모가 되어 시골을 바라보니 참 많은 생각이 오간다. 
하지만 많은 문제점을 뒤로 하고 어릴 적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소울에게 시골에 조부모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현재 만 두돌이 안 된 소울은 매일 같이 많은 가축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저수지 근처로 산책을 가고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계절마다 피고 자라는 꽃과 나무, 열매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는 분명 소울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언한다. 
또 학교에서 아이들을 겪어보니 비만인 아이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체로 경계심보다는 순박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를 접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폭력이나 반항, 이기심 면에서는 훨씬 인간적인 면이 많다는 점에서 확실히 인성교육은 주변 환경과도 크게 밀접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골의 환경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열악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적어도 난 우리 아이가 경쟁보다는 배려를, 문화의 혜택보다는 자연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후는 어떨까. 시골은 할 일이 상당히 많지만 반면 꽤 지루하기도 하다. 과연 내가 그런 것들에 쉽게 적응하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곳에서 아궁이에 불 때는 집을 짓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지역에서 개최하는 이런 저런 강좌를 들으면서 지내는 분을 여럿 만나보다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살던 고향은_ 꽃피는 산골.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지금. 혹은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지금. 생각도 많고 심경도 복잡할 수 있겠지만. 
그래.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살았던 곳을 다시 찾는다고 하잖아. 
나에게 고향, 혹은 서방님의 고향이 있다는 사실은 꽤 든든한 밑천인 것 같다. 


어둑어둑~
달을 향한 길 위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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